티스토리 뷰

"넌 군대 체질이야!!!"



2019/02/22 - [나는 패턴 메이커다.] - 나는 패턴 메이커다 - 03





난 계급 사회를 싫어한다.

직장내의 수직 관계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굽실거리며, 사탕발림 소리도 싫어한다.

군대, 회사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학교 선배나 회사 상사들과는 친하지 않았다.

 

내가 캐나다로 온 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수직 관계를 싫어하는게 

큰 부분을 차지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나에겐 선택은 없었다. 

무조건 군대는 가야하기에, 

논산 훈련소에서 8주의 훈련을 받는 동안 별탈 없었다. 

초, 중,고를 시골에서 자랐다 보니, 

군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남들보다 오래달리기도 잘했고, 

군장을 매고 몇십 킬로를 걸어도 물집 하나 안 잡혔고,

(4월 행군할적에 딸기 밭을 지날때 그 달콤한 딸기 향을 잊을 수가 없다)

화생방을 해도 눈물 정도만 나올뿐 끄떡 없었고,

사격 또한 잘했다.

(훈련소 시절, 사격이 재미 있어,

스나이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조교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동기들과 조교들은 그런 내게

"넌 군대 체질이야, 말뚝박아라!"

수 없이 들었던 말이다. 


한때 맘이 흔들렸었지만

난 계급 사회를 싫어하던 터라

일찍 마음을 접었다. 


그러던 중 취침 시간이 되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조교들이 몇명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도 불렸다.


모두들 수근거렸고,

누구는 포대로 갈것이다. 

누구는 박격포 부대로 갈 것이다. 등등 

힘든 곳으로 배치 받을 것이다라며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불려간 사람이 꽤나 많았다. 

그리곤 우리들에게 신상을 적으라고 한다. 

자세하게, 세세하게,

궁금했지만, 명령이니 묻지도 못했으며,

그냥 적기만 했다. 

그렇게 지나갔고, 

여느 때와 훈련들을 받았고,

그러다 보니 훈련소 퇴소가 찾아왔다.


마침내

다들 어느 자대 배치를 받았는지도 모른체

8주 동안 함께 고생했던 동기들과도 헤어져야만 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기차에 올라타

앞으로의 깜깜한  미래에 묵묵히 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옆자리 녀석에게

"넌 무슨병과야?"

"난 전산과 지원했는데"

앞자리 녀석에게 

"넌 무슨 병과야?"

"난 컴퓨터 관련 병과"

등등, 컴퓨터와 관련된 친구들이였다.


난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체 대전에 도착,

다시 군용 트럭으로 갈아타고 자대로 들어섰다.

"육.군.통.신.학.교?"

대전이 자대라니 우리 집이랑 가깝자나?

마냥 좋았다. 


그리곤 내무실로 들어갔는데 그 곳엔

나와 같은 훈련병들 뿐이였다.

자대가 아니고, 다시 훈련을 받는 것이었다.

그것도 16주 동안, 동기들과 말이다.


난 지원을 한것도 아닌데 왜? 이곳에?

그것도 잠시, 난 좋았다. 

군대지만, 16주를 학교를 다닌다니 말이다.

난 통신병으로 착출이 되었던 것이고, 

그래서 논산 훈련소에서 불려나가 세세한 신상을 적었던 것이였다. 


부대와 부대를 연결해주는 큰 안테나를 설치하고, 

부대와 부대사이를 연결해주는 통신병이였다. 


16주 동안 훈련을 받고, 공부를 하고, 

시험도 치뤘으며, 비밀 문서들도 다뤘다.


 


그 곳이 군대였지만 이지만 좋았던 것은 

한 여름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었으며, 

동기들과 내무실에서 티비를 맘껏 봐도 되었으며

매점도 맘껏 이용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옆 동기들에게 물었다

"넌 여기 어떻게 왔냐?"  

"음, 난 큰 아버지가 어디 부대 대령이야"

"엄마 친구 분이 원스타야"

"아빠의 지인분이 군인이야"


이런 파라다이스에 온것도 당연하리 만큼

많은 동기들의 빽이 탄탄했다.

난 그냥 어떻게 흘러서 운좋게 온거 였는데.


아무튼 16주 동안의 훈련이 끝나고, 

마침내 자대배치를 받게 되는데

경기도 양주로 향하게 된다.


자대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무실을 들어가는 순간 

나를 압도하던 그 분위기

고참들의 그 눈빛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나의 꼬인 군생활은 시작되었다.

고참들의 갈굼은 기본이였으며, 

잠자리에 손깍지를 껴고, 

배에 올린 상태 고대로 아침까지 자야하는 등등

(이렇게 자면 손이 저리다)

 그래도 다행인건 내가 오기 얼마전

고참 몇명이 후임 폭행으로 영창을 가서

나에게 폭행은 없었다.


그렇게 몇주를 지내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군대가서 탈영을 하고, 

자살도 하고 그러는구나라고


남은 오랜 군 생활을 그렇게 긴장하며 살아야하나?

내가 고참이 되면 분위기를 다 바꾸어 놓겠어 등등

많은 결심들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내 군생활은 그렇게 지나 갈 줄로만 알았다.


.

.

.


2019/03/11 - [나는 패턴 메이커다.] - 나는 패턴 메이커다 - 05


댓글